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정부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전 상황 ([[동두천 전투|동두천]] ~ [[포천 전투]]) == 북한군은 공격 첫날 의정부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4사단은 제16연대를 전곡 남방의 사라동에 전개시키고 제18연대를 아미리에 전개시켜 전선돌파를 시도했다. 이 때 제16연대가 전곡에서 한탄강을 건너 초성리 방향으로, 제18연대가 동이리 부근에서 임진강을 건너 도감포~화방촌 간의 소로를 따라, 그리고 제107전차연대의 전차들이 3번 도로를 따라 초성역 쪽으로 공격해 옴으로서 [[동두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 공격으로 동두천 경계를 담당했던 제1연대 2대대가 3시간 만에 와해되었다. 그러나 제1연대는 휴가 및 외박 등으로 인한 병력 부족, 그리고 성능이 뒤떨어지는 무기 및 장비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까지 동두천을 지켜내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후 더욱 격렬해지는 북한군의 보병·전차·포병 협동공격에 밀려 동두천을 포기하고 이날 22시경 덕정으로 철수하였다. 덕정초등학교에 집결한 제1연대 병력은 [[전멸|약 70% 정도로 감소한 상태였으며,]] 이곳에서 재편성과 부대정비에 들어갔다. 한편 포천 전방을 지키던 국군 9연대 2대대도 북한군 제3사단 제7연대를 맞이함으로써 [[포천 전투]]가 시작되었고, 뒤따르던 북한 9연대는 7연대가 정면 공격을 하는 사이 서쪽 영송리~가양리 방면을 타고 [[87번 국도]]로 포천까지 우회 진격해 9연대 주력을 포위, 측방에서 급습하려 하였다. 하지만 2대대의 저항이 거세자 이 계획이 틀어져 버렸고, 이 틈을 타 제9연대의 나머지 대대는 가랑산과 천주산으로 저항선을 옮겼다. 그러나 이조차도 전차를 앞세우고 남하하는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어 17시 경에 [[태릉(문정왕후)|태릉]]과 [[퇴계원읍]] 등지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육군본부는 북한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조기에 방지하기 위해 의정부를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결의로 서울 부근에 주둔한 부대 뿐만 아니라 후방에 있는 부대들도 의정부 일대에 집중 투입하기로 해 수도경비사령부 제3연대와 제18연대, 포병학교 소속의 2개 대전차중대와 기갑연대의 장갑소대, 육군사관학교 생도대대를 비롯하여 대전의 제2사단, 대구의 제3사단, 광주의 제5사단이 황급히 출동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너무도 긴박했기 때문에 후방지역의 부대들은 완전편성을 갖추지 못한 채 대대단위로 각각 출발하였으며, 서울에 도착한 각각의 단위부대들도 후속하는 본대와 합류하지 못한 상태로 전선에 [[축차투입]]돼 3연대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얻어맞았고, 북한군은 이들을 유린하며 의정부로 밀려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